- 연초 대비
- +38%4,200 → 6,913
- 6월 고점 대비
- −24%9,064 → 6,913
- 8월 21일 종가
- 6,912.95지난 금요일 기준
올해 초 코스피는 4,200대에서 출발했습니다. 6월 19일에 9,063.84까지 올랐고, 8월 3일에는 6,257.45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종가는 6,912.95입니다. 같은 해, 같은 시장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 3월 4일에 하루 12.06%가 빠지며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습니다. 역대 최대 낙폭이었고, 미-이란 전쟁이 이유였습니다. 3월 한 달에만 20.4%가 빠져 5,052까지 밀렸는데, 바로 다음 달인 4월에는 한 달 만에 30.6%가 올랐습니다. 1998년 2월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월간 상승률입니다.
그리고 7월 13일에 올해 두 번째 서킷브레이커, 7월 28일에는 하루 10.84% 하락. 사흘 뒤인 7월 31일에는 하루에 17.91%가 올랐습니다. 역대 최고 상승률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전망이라는 걸 왜 읽는지 회의가 들 만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료를 좀 찾아 읽어봤습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하반기 전망 자료 여러 편, 그리고 관세청·산업부의 수출입 동향 1~7월치까지. 읽고 나서 남은 생각을 정리해둡니다. 전망치를 옮겨적는 글은 아니고, 올해 시장을 겪으면서 내가 뭘 잘못 보고 있었나에 대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Fig. 1 — 2026년 코스피 궤적
지수
전망치는 계속 위로 수정됐고, 지수는 그 위아래를 다 뚫었다
먼저 숫자부터. 올해 나온 주요 지수 전망을 시간순으로 늘어놓고, 실제 지수가 오간 범위를 겹쳐봤습니다.
Fig. 2 — 전망 밴드 vs 실제 등락 범위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째, 숫자가 계속 위로 고쳐졌습니다. 모건스탠리는 2월에 6,500이라고 했다가 8월에 9,000으로 올렸습니다. 골드만삭스는 9,000에서 12,000으로, KB증권은 한 번에 40%를 올려 10,500으로 잡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실제 지수는 9,064 → 6,257 → 6,913을 오갔죠.
둘째, 지수는 이 밴드들의 상단도 하단도 다 뚫었습니다. 6월에 9,064를 찍으며 대부분의 상단을 넘겼고, 8월에 6,257까지 밀리며 거의 모든 하단을 깼습니다. 7월 4일에 나온 하반기 하단 8,400은 아흐레 뒤인 7월 13일에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처음 든 생각이 이겁니다. 목표지수는 예측이라기보다 요약에 가깝다. 이익 전망치가 오르면 목표지수도 오르는데, 이익 전망치는 이미 일어난 일(메모리 가격 상승)을 반영해서 나옵니다. 그러니 목표지수를 보고 매매 타이밍을 잡으려 한 게 애초에 무리였던 셈입니다.
자료를 다 읽고 나서 남은 문장은 하나였다
전망치는 제각각인데, 상승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은 어느 자료든 거의 같은 말을 합니다. 표현만 다릅니다. 투자가 견인하는 성장 사이클, AI Capex 슈퍼사이클, AI 인프라 병목. 결국 한 줄로 줄어듭니다.
Fig. 3 — 상승 논리는 한 줄짜리 사슬이었다
논리 자체는 훌륭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다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강점이 아니라 취약점을 봐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승 논리가 하나라는 건, 그 하나가 흔들리면 지수 전체가 같이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7월 2일 급락의 이유는 “AI 컴퓨팅 자원 과잉 우려”였습니다. 실적이 나빠진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까 하는 의심 하나였죠.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지수를 산다는 건 사실상 반도체 두 종목을 사는 일이 됐다는 뜻입니다. 분산투자를 한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던 겁니다. 이게 올해 배운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직접 세어봤다 — 수출 데이터 7개월치
자료를 읽다 보면 “반도체 수출 단가가 좋다”는 문장이 계속 나옵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아서, 관세청과 산업부가 매달 내는 수출입 동향을 1월부터 직접 열어봤습니다. 숫자를 늘어놓으니 훨씬 선명했습니다.
Fig. 4 — 반도체 수출액과 증가율
세 가지가 보입니다.
첫째, 이건 전부 가격입니다. 6월 총수출은 전년 대비 70.7% 늘었는데, 같은 달 수출 중량은 3.3% 줄었습니다. 4월과 5월은 더 극단적이어서, 중량이 각각 17.7%, 17.9% 감소하는 동안 금액은 48%, 53% 늘었습니다. 더 많이 판 게 아니라 더 비싸게 판 겁니다.
관세청이 발표하는 항목의 정식 명칭은 ‘수출 중량’으로, 포장을 뺀 순중량을 톤 단위로 집계한 값입니다. 개수를 센 물량 지표는 아니지만, 얼마나 많이 실어 보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물량의 대용 지표로 읽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물량’이라고 쓴 대목은 모두 이 수출 중량을 가리킵니다.
Fig. 5 — 금액은 늘고, 물량은 줄었다
둘째, 한국 수출의 44%가 반도체입니다. 1월에 31%였던 게 6월에 44%가 됐습니다. 국가 단위로 이 정도 쏠림은 흔치 않습니다. “코스피가 반도체 두 종목”이라는 말이 증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죠.
셋째 —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 7월에 처음 꺾였습니다. 반도체 수출액은 6월 449.5억 달러가 정점이었고 7월은 410억 달러였습니다. 증가율도 196.9%에서 178.8%로 내려왔습니다. 금액과 증가율이 동시에 방향을 바꾼 건 올해 처음입니다. 그리고 코스피 고점은 6월 19일이었습니다.
|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
| 총수출 | 658 | 673 | 866 | 859 | 878 | 1,022 | 989 |
| 총수출 YoY | +33.8% | +28.7% | +49.2% | +48.0% | +53.4% | +70.7% | +62.8% |
| 반도체 | 206.9 | 252.6 | 329.7 | 320.4 | 372.9 | 449.5 | 410.0 |
| 반도체 YoY | +102.5% | +157.9% | +149.8% | +171.4% | +167.7% | +196.9% | +178.8% |
| 반도체 비중 | 31% | 38% | 38% | 37% | 43% | 44% | 41% |
| 수출 중량 YoY | +11.4% | −3.5% | +3.1% | −17.7% | −17.9% | −3.3% | — |
다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
한 달치로 사이클이 꺾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업일수 차이도 있고 계절성도 있으니까요. 7월 수출은 여전히 역대 2위 규모였고, 반도체는 두 달 연속 40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나쁜 숫자가 전혀 아닙니다.
반론
더 중요한 반론은 이겁니다. 수출 증가율 둔화가 사이클 종료의 신호가 아닐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범용 메모리를 더 많이 찍어내는 게 아니라 HBM으로 생산능력을 재배치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HBM은 DDR5 대비 웨이퍼를 4~5배 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비투자를 늘려도 실제 출하 물량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는 뜻이고, “투자 증가 = 공급과잉 = 사이클 끝”이라는 과거 공식이 이번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짜 매도 신호는 2027년 이익 정점 자체가 아니라 2028년 이익 전망치가 하향으로 굳어지는 시점이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현재는 2026·2027·2028년 전망치가 모두 위로 조정되는 중이고요.
여기에 하나 더. 반도체 기업들이 HBM을 장기 공급계약 형태로 팔기 시작하면서 과거처럼 시황에 그대로 노출되던 이익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익의 변동성이 줄면 같은 이익에도 더 높은 배수를 줄 수 있게 됩니다. 한국 반도체가 아시아 경쟁사 대비 ROE는 높은데 PBR은 낮다는 지적도 여기서 나옵니다.
나는 7월 수출 데이터를 사이클 둔화의 첫 신호로 읽었지만, 이걸 생산능력 재배치 과정의 일시적 잡음으로 읽는 시각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한 달 숫자로 결론 내지 말고, 두세 달 더 보고 판단하자는 게 지금의 결론이다.
여러 자료가 각자 다른 자로 같은 곳을 재고 있었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어느 자료도 “언제까지 오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끝을 재는 자를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 과거 다섯 번의 반도체 수출단가 사이클에서 상승 기간은 평균 22개월이었고, 5월 기준으로 12개월이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가 고점은 단가 고점보다 4~9개월 앞서 형성됐습니다.
- 반도체 강세장의 고점은 이익 사이클의 정점 근처에서 만들어지는데, 기저효과를 감안한 이번 정점 예상 시점은 2026년 8월경이었습니다.
- 반도체는 영업이익률이 정점을 지날 때 주가도 정점을 지나는데, 컨센서스상 영업이익률 정점은 2027년 2분기로 잡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지표인데 가리키는 구간이 겹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익의 크기는 2027년까지 계속 커진다.
하지만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의 정점은 2026년 하반기에서 2027년 초 사이에 있다.
그러니까 하반기에 봐야 할 건 “삼성전자가 얼마를 벌었나”가 아니라 “지난번보다 증가율이 꺾였나”입니다. 실적이 좋아도 주가가 빠질 수 있는 구간이라는 뜻이죠. 7월 말~8월 초 급락을 시장이 ‘셀온’이라고 부른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조금 서늘했던 건, 위 세 개의 자 중 앞의 두 개가 사실상 맞았다는 점입니다. 주가 고점은 6월 19일, 반도체 수출액 고점도 6월. 5월에 쓰인 자료들이 재고 있던 그 구간에 정확히 들어와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 읽었더라도 6월 19일에 팔 수 있었을까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8월에 실제로 지수를 움직인 건 이익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쓰고 8월 흐름을 다시 보니, 앞의 이야기와 결이 다른 대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최근 지수를 크게 흔든 건 반도체 실적이 아니었습니다.
8월 19일 코스피는 하루에 5.80% 빠져 6,471.17로 마감했습니다. 삼성전자가 7%, SK하이닉스가 9% 안팎 밀렸는데, 반도체 업황에 나쁜 소식이 나온 날이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밖에 있었습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장중 5.337%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를 찍었습니다. 이익이 아니라 할인율이 지수를 끌어내린 겁니다.
반대로 바로 다음 날인 8월 20일에는 5.89%가 올랐습니다. SK하이닉스의 40조 원 자사주 소각 발표와 외국인 2.3조 원 순매수가 겹친 날이었죠. 이번에도 새로운 이익 뉴스는 없었습니다. 주주환원과 수급이 만든 반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환율이 있습니다. 올해 원/달러 환율 고점은 6월 초의 1,560원선이었습니다.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의 최고 수준이었죠. 그런데 8월 들어 1,400원이 열 달 반 만에 깨졌고 1,385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약 열 주 만에 원화 가치가 10% 넘게 오른 겁니다.
여기서 눈에 걸린 것
환율 고점은 6월 초, 지수 고점은 6월 19일. 원화가 가장 약했던 무렵에 지수가 정점을 찍었고, 원화가 강해지기 시작하자 지수는 빠졌다가 외국인 매수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앞에서 “달러가 약해지면 외국인이 들어오고, 그게 반도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린다”는 논리를 읽고 체크리스트에 넣어뒀는데, 그 조건이 이미 갖춰지는 중이었던 셈입니다. 제가 이익 데이터만 들여다보는 동안 실제로 움직인 변수는 금리와 환율이었습니다.
그래서 1부의 결론에 한 줄을 더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익의 증가 속도가 꺾이는지를 보는 건 여전히 맞습니다. 다만 그것만 보고 있으면 정작 지수를 움직이는 날의 이유를 놓칩니다. 이익은 방향을 정하고, 금리와 환율은 그날의 크기를 정하는 것 같습니다.
섹터
하반기의 화두는 “쏠림에서 확산”
지수 이야기만 하면 결국 반도체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하반기 자료들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 하나 있었습니다. “쏠림에서 확산”.
상반기가 반도체 하나로 밀어붙인 장이었다면, 하반기의 관전 포인트는 특정 업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여러 업종이 각자의 이유로 움직이기 시작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8월의 코스피–코스닥 디커플링(코스피는 급락하는데 코스닥은 상승)도 이 맥락에서 보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Fig. 6 — AI 투자 병목이 옮겨가는 순서
네 섹터를 고른 기준 — AI 사이클로부터의 거리
1부에서 내린 결론이 “상승 논리가 하나뿐이라 위험했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섹터를 고르는 기준도 거기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망해 보이는 걸 네 개 고르는 게 아니라, AI 사이클이 흔들렸을 때 같이 흔들릴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나눠서 걸치는 것.
그 기준으로 놓고 보니 네 섹터가 축 위에 자연스럽게 늘어섰습니다.
Fig. 7 — 네 섹터의 위치와 이익의 원천
반도체는 사이클의 한복판이고, 전력기기·원전은 그 병목이 옮겨갈 다음 정거장입니다. 둘 다 결국 “AI 투자가 계속되는가”라는 같은 질문에 묶여 있습니다. Fig. 3에서 본 그 첫 고리가 흔들리면 둘 다 흔들립니다.
반대편 끝에 조선·방산과 화장품을 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둘의 이익은 AI가 아니라 다른 데서 나옵니다. 조선·방산은 이미 계약이 끝난 수주잔고에서, 화장품은 수출과 인바운드 소비에서. 올해 7월에 배운 게 “한 가지 논리에 전부 걸면 그 논리가 의심받는 날 전부 흔들린다”였으니, 그 반대로 짜보자는 겁니다.
반도체 — 여전히 중심, 다만 “기대치를 재점검하는 구간”
앞에서 길게 썼으니 짧게만. 이익은 견조하고 2028년 전망치까지 상향 중입니다. 팔 이유는 아직 데이터에 없습니다. 문제는 주가에 이미 반영된 기대치입니다. 7월 급락은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가 너무 앞서 나가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새로 눈에 들어온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HBM 장기 공급계약으로 이익 변동성이 줄면 밸류에이션 배수 자체가 재평가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유리기판 같은 후공정 신규 테마가 밸류체인 안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도체를 ‘사이클 주식’으로만 보던 관점이 바뀌는 중인 것 같습니다.
전력기기·원전 — AI 병목이 옮겨가는 다음 정거장
이번에 자료를 읽으며 가장 설득력 있게 느낀 논리입니다. 한국은 메모리, 전력기기, 원전·발전설비, 2차전지를 동시에 가진 드문 제조업 공급망입니다. “한국은 AI를 쓰는 나라가 아니라 AI 투자를 제조업 이익으로 흡수하는 공급국”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확인 가능한 근거도 있습니다. 미국의 상업용 전기 소비량이 주거용을 넘어서기 직전이고,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의 수주잔액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수주잔고가 쌓이는 동안 받은 물량은 마진이 높을 가능성이 크고요. 반도체보다 한 박자 뒤에 오는 사이클이라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조선·방산 — 이미 확보한 수주가 실적이 되는 구간
왜 지금인가. 이 섹터의 이익은 올해 수주를 따내야 생기는 게 아니라, 지난 2~3년간 쌓아둔 수주잔고가 매출로 인식되는 시점에 생깁니다. 상반기 내내 반도체와 나란히 시장을 끌었던 것도 그래서였고, 하반기 자료들이 이 섹터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도 “앞으로 좋아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이미 받아둔 게 지금부터 실적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매크로가 흔들려도 실적의 가시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죠.
방산 쪽은 여기에 지정학이 더해집니다. 중동 분쟁이 길어지면서 각국의 국방 예산과 수출 파이프라인이 함께 늘어나는 국면이고, 이건 AI 투자 사이클과는 완전히 다른 시계로 움직입니다.
조선은 성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에너지·소재 가격이 오르면 선박 가격(선가) 지수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유가와 원자재가 부담스러운 국면에서 일종의 헤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유가 상승이 다른 섹터의 마진을 갉아먹을 때 오히려 도움이 되는 몇 안 되는 자리입니다. AI와 직접 연결되지 않아 장기 성장률을 낮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포트폴리오 안에서의 쓰임새는 분명해 보입니다.
화장품 — 반도체와 상관없이 굴러가는 현금흐름
솔직히 이번에 찾아보기 전까지는 큰 관심이 없던 섹터인데, 숫자를 보고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왜 지금인가. 화장품이 하반기 자료마다 등장하는 배경에는 세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는 내수 회복입니다. 정부 세수가 늘고 기업의 인건비 지출과 배당 지급액이 늘면서 소비 여력이 살아나는 국면이라는 진단이 공통적이었습니다. 둘째는 인바운드입니다. 외국인 입국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데, 아직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 앞으로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셋째가 아래 숫자, 즉 수출입니다.
역대 상반기 최대
14.5억 달러 · +41.5%
1분기 31억 달러 대비
세 번째 항목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K-뷰티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리스크는 ‘중국 의존’이었는데, 그 구조가 실제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기초화장품이 54.8억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유행을 타는 색조 중심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반도체 사이클과 상관관계가 낮습니다. 메모리 가격이 꺾여도 미국에서 팔리는 기초화장품 수량이 줄어들 이유는 없으니까요. 시총 절반이 반도체 두 종목인 시장에서, 다른 엔진으로 도는 섹터의 가치는 수익률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소비·항공운송까지 한 묶음으로 놓고 보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매달 확인하려는 것
전망치를 외우는 대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두는 편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 01
반도체 수출액과 증가율 — 매월 1일 발표
가장 빠르고 정직한 지표입니다. 6월 449.5억 달러가 정점이었는지, 7월 410억 달러가 일시적 조정이었는지는 8월·9월 숫자로 갈립니다. 두 달 연속 감소면 신호로 보려고 합니다.
- 02
수출 중량 — 같은 발표 자료에 함께 실림
금액이 아니라 실어 보낸 양이 늘기 시작하면 사이클의 성격이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순수한 가격 사이클이었는데, 여기에 물량이 붙으면 오히려 더 길게 갈 수 있습니다.
이걸 “가격이 밀어올리던 국면에서 물량이 밀어올리는 국면으로”라고 표현하는 시각도 있더군요. 저는 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봅니다. 증가율이 꺾이는 게 사이클의 끝이 아니라 엔진이 바뀌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①의 증가율만 보지 않고 이 항목을 함께 봅니다.
- 03
이익 전망치가 몇 년 앞까지 오르고 있나
2027년이 이익의 정점이냐를 두고 다투는 것보다, 2028년 전망치가 아직도 위로 조정되고 있는지가 실질적인 판단 근거라고 봅니다. 지금은 2026·2027·2028년이 모두 상향 중입니다. 이 중 가장 먼 해가 아래로 방향을 굳히면, 그때가 진짜 신호입니다.
- 04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 순매수
달러가 약해지면 외국인이 들어오고, 그게 반도체 밸류에이션을 다시 끌어올리는 구조입니다. 6월 초 1,560원선에서 8월 1,385원까지 이미 10% 넘게 내려왔으니 조건은 갖춰진 셈이고, 이제 8월 20일의 2.3조 원 순매수가 일회성인지 추세인지가 관건입니다.
여기에 미국 장기 국채금리를 함께 봅니다. 8월 19일 하루 −5.8%가 딱 그 이유로 나왔습니다. 이익이 아니라 할인율이 지수를 흔드는 날이 앞으로도 나올 겁니다.
- 05
확산의 증거
반도체 말고 오르는 업종이 몇 개인지 세어보는 것. 전력기기·조선·화장품·금융이 각자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수의 성격 자체가 바뀝니다. 하반기에 제일 보고 싶은 장면입니다.
- 06
내 포트폴리오의 실질 반도체 비중
지수 ETF, 펀드, 개별주를 다 합쳐 실제 반도체 노출이 얼마인지 한 번은 계산해볼 생각입니다. 시총 절반이 두 종목인 시장에서는 “분산했다”는 감각이 잘 맞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코스피에서 배운 게 있다면, 방향을 맞히는 것과 살아남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연초 대비 +38%”만 보면 아주 좋은 해입니다. 그런데 6월 19일 9,064에 산 사람에게 올해는 −24%의 해였고, 7월 13일 서킷브레이커에 놀라 정리한 사람에게는 회복이 없는 해였습니다. 같은 지수, 같은 자료, 전혀 다른 결과.
읽은 자료 중 지금까지 제일 정확했던 건 목표지수가 아니라 이 한 문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 5월 코스피는 S&P500의 4배 레버리지 상품과 같은 변동성을 보여줌.”
삼성증권, 2026년 5월
하반기에도 이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익 사이클은 아직 살아 있고, AI 투자는 반도체를 넘어 전력과 발전으로 병목을 옮겨가는 중입니다. 다만 상승 논리가 하나뿐인 시장에서는 얼마를 버느냐보다 얼마나 들고 있을 수 있느냐가 결과를 가른다는 걸, 올해 상반기가 꽤 비싼 수업료로 알려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지수 전망치를 좇기보다, 확산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를 매달 세어보려고 합니다.